하동요양원
요양원이야기
나의 어머니 마동댁 김윤석님께 올립니다.
이  름 : 관리자
시  간 : 2012-05-22 13:50:40 | 조회수 : 1423
어머니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손씨 낭군 만나 가정을 일구었더니 1년도 채 안되어 2차대전으로 일본징집 끌려가시어 2년 만에 구사일생 살아오셨다지요?

또다시 일본으로 돈벌이 가셔서 3년만에 돌아와 논사고 집짓고 사신 그 3년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이었셨죠?

일본에서 악착같이 벌어와 일군 가산을 5년만에 술로 탕진하고 저를 낳아 풀죽조차 끓여먹을 수 없는 생활에도 아버님은 술집에서 생활을 하셨다지요?

그러나 산입에 풀칠은 할 수 없다며 곯아가며 베짜고 길삼으로 생계를 꾸려가려 했지만 짜놓은 베와 빗자루까지도 아버님의 술값으로 모두를 내어주었지만 단 한번도 원망하지 않으셨던 마동댁 어머니! 그것이 그 시절 우리 어머니의 삶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계묘년 보리흉년이 있었지요. 보리를 베어놓고 비가와서 뒤집어 말리면 또 비가오기를 7번을 하고나니 보리단에 싹이 나고 싹이 난 보리단을 갈아서 죽을 쑤어먹고 식구대로 배탈이나서 고생을 했던 기억!

보리쌀도 없는데 쌀밥 타령을 하는 철없는 여동생의 어리광에 돌아서 흐느끼는 당신의 모습은 그 시대 우리의 어머니 모습이었습니다.

3대 독자인 저를  찢어지는 가난으로 코앞에 있는 중학교에도 보낼 수 없었던 현실!
중학교  교복을 그렇게도 입고 싶어하는 3대독자에게 학교를 보내줄 수 없었던 현실! 그러한 현실에서도 자식에게 당당해 보이려 하셨던 나의 어머니 마동댁 당신이었습니다.

제가 가정을 꾸려 농촌의 생활로는 도저히 처자식을 먹여살릴수 없을 것 같아 같아 축협에 취직을 하려고 받았던 채용신체검사에서 B형간염 판정! 어머니는 또 하염없는 눈물로 시간을 보내셨지요! 그러나 어머니의 삶을 알기에 저는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큰 스승이었기에 어머니의 삶에서 저는 삶의 지혜를 배웠고, 희망을 보았으며 꿈을 보았기에 병을 이겨낼 수 있었던것었습니다.

친구의 도움으로 시작한 낙농! 그리고 저는 튼실한 한 가정을 일굴 수 있었지요!

그리고 축사가 좁아 축사를 새로 옮기는데도 어머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었고 축사 옆으로 집을 지어 이사를 가는데도 아들에 대한 칭찬의 말씀 한번 하지 않았던 어머니! 서운한 마음에 야속하기 까지 했던 어머니!
그때 어머니 당신은 이미 치매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한 부모는 열 자식 거느려도 열 자식은 한 부모 못 모신다’는 말이 현실이 된 오늘!
마동댁 어머니는 치매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시지만
제가 ‘엄마’ 하고 부르면 활짝 웃으며 ‘왔나’ 하며 대답은 하시니까 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어머니! 당신이 곁에 계시기에 저는 오늘도 제 삶에 충실하렵니다.

어버이 날! 오늘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옛 추억이 사무치는 하루입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