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름 : 관리자
시 간 : 2011-11-28 2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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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1268
10월초 화창한 가을 한낮...
한 어르신께서 나를 부르셨다.
" 정선생아~! 이리 와 봐라~"
" 네! 어르신~! "
청소중이던 난 걸레를 내려놓고 어르신 곁으로 다가가 허리를 굽혀 대답했다.
" 내 얼굴 옆으로와서 위좀 봐라, 내가 눈이 흐려 저게 뭔지를 모리것다~~~"
어르신 얼굴 옆으로 내얼굴을 나란히 하고 생활실 천정을 보았다.
흰색 천정엔 형광등만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 어르신 형광등 밖에 안보이는데요? 밤에 불이 안들어오던가요?"
" 아니 그거 말고!...형광등에 비치는 바깥세상을 봐라"
정말 그랬다. 형광등 전구가 꽂혀있는 안쪽으론 은색칠이된 반사판이 있었고,
반사판은 누가 일부러 그랬을리 없지만, 반대편 창문밖으로 각이져, 창밖 풍경이
거울처럼 반사되어 보여지고 있었다.
"오~ 보여요 어르신~! 형광등 불빛을 방전체로 퍼트리려는 반사판인데,
낮에는 거울처럼 반사되어 밖이 보이네요 ~ ^^ "
"그렇제? 보이제? 그런데 말이다 내가 종일 들여다 보고 있어도 뭔지 모리것는게 있다. 저 속에 누렇게 암틀거리고 있는게 뭐꼬?"
반사판속에는 가을 햇살에 노랗게 영글은 벼이삭들이 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 어르신! 논에 벼이삭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네요~"
" 그래? 저게 나락이라고!? 엊그제 모내기를 하더니 벌써로 저렇게나 익었나?"
" 어르신!모내기하던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던가요? 모내기 한건 어떻게 아시는데요?"
" 들리기는! 지금처럼 천장으로 봤지"
그랬다!! 어르신은 침상에 누워 선생님들이 해주시는 데로만 움직일수있는
와상 어르신이셨고, 바로 눕혀져 있을때 형광등 반사판으로 바깥 세상을 보고 계셨다.
반사판을 통해 봄을 알고, 반사판을 통해 여름을 느끼며, 반사판을 통해 가을과 겨울을 보고 계셨던 것이다.
순간 모든것들이 멈춘듯 했고...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유난히 밖에 나가길 싫어하시고, 허리가 아프다며 휠체어 타기를 두려워하시는
어르신이라 밖으로 모시는 횟수가 다른 어르신들에 비해 다소 적었던 어르신...
작은 방에서 1미터도 채 되지않는
형광등 반사판으로 세상 구경을 하고 계셨던 어르신...
난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에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겨우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어르신께 말씀드렸다.
"어르신 이럴게 아니라, 휠체어 타고 같이 나가서 봐요!
따사로운 햇볕도 쐬고, 가을바람도 느끼고...
제가 간식이랑 음료수 준비할테니 함께 산책해요."
평소 휠체어 타기를 싫어하시는 어르신도 그날은 벼이삭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라는 내 말을 확인이라도 하고 싶으셨는지 단번에 허락을하셨고,
난 부랴부랴 휠체어로 어르신을 모셨다.
어르신뒤에서 휠체어 손잡이를 잡은 내 두손에는 그 어느때보다 더 힘이 들어갔고,
밖으로 향하는 내 두 발걸음은 그어느때보다 더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