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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이  름 : 무적물치
시  간 : 2004-06-12 13:28:35 | 조회수 : 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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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은 책상이다. (Ein Tisch ist ein Ti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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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늙은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곤한 표정을 지니고 있으며 미소를 짓기에도 너무 지쳤고 화를 내기에도 너무 지친 어떤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어떤 조그만 도시의 길 끝 또는 교차로 근처에 살고 있다. 그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회색 모자와 회색 바지와 회색 상의를 입고 있고, 겨울에는 긴 회색 외투를 걸친다. 그의 목은 가늘고 피부는 기름끼가 빠졌고 주름이 잡혔다. 하얀 셔츠의 깃이 그에게는 너무 넓어 보인다.

그의 방은 그 집의 맨 위층에 있다. 어쩌면 그는 결혼을 해서 자식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옛날에는 다른 도시에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도 한때 어린아이였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때는 어린아이들이 어른처럼 교육되던 시절이었다. 할머니의 사진첩을 보면 그런 시절이 나온다. 그의 방에는 의자가 둘, 책상하나, 양탄자 한 장, 그리고 침대와 옷장이 하나씩 있다. 조그만 책상 위에는 괘종시계가 하나, 그 옆에는 오래된 신문과 사진첩이 놓여 있고 벽에는 거울과 사진이 한 장 걸려있다.

이 늙은 남자는 아침마다 산책을 하고 오후에도 한 차례 산책을 했다. 이웃사람들과 몇 마디 말을 주고 받고, 저녁때면 자기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이러한 일과는 결코 변하는 법이 없었다. 일요일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남자가 책상에 앉아 있을 때면 괘종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가 그에게 들려왔다. 괘종시계는 언제나 똑딱거렸다.

그런데 한 번은 보통 때와는 다른 날이 있었다. 그 날도 햇볕이 났고,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낳았고, 새들은 지저귀었고, 사람들은 친절했고, 아이들은 놀고 있었다. - 보통 때와 달랐던 점은 이 남자에게 갑자기 세상 만사가 마음에 들게 된 것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질 거야.』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셔츠의 맨 위쪽 단추를 끌르고,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발걸음을 빨리 했으며, 심지어는 까치 걸음을 흉내내면서 기뻐했다. 그는 자기 집 가는 길로 접어들자 아이들에게 고개를 끄덕거렸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는 층계를 높이 올라가, 주머니에게 열쇠를 꺼내어 자기 방 문을 열었다.

그러나 방 안에는 모든 것이 여전했다. 책상 한 개, 의자 두 개, 침대하나, 그리고 그가 앉자마자 다시 괘종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으므로 모든 기쁨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 남자는 커다란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는 거울 속에서 자기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았고, 자기의 눈이 가늘게 깜빡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그는 주먹을 쥔 두 손을 높이 올렸다가 책상 바닥을 쾅 쳤다. 처음에는 한 번만 쳤고, 좀 있다가 또 한 번, 다음에는 북 치듯 책상을 두드리며 자꾸만 소리 질렀다.

『달라져야만 한다. 달라져야만 해!』

그에게는 괘종시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의 손은 아파지기 시작했고 목소리는 쉬어 버렸다. 그러자 다시 괘종시계의 소리가 들려왔고,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언제나 똑같은 책상,』하고 그 남자는 말했다. 『똑같은 의자, 침대, 사진. 나는 언제나 책상을 책상이라고 말하고, 그림을 그림이라 말하고, 침대는 침대라 부르고, 의자는 의자라고 부른다.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만 한단 말인가?』불란서인들은 침대를 「리」, 책상을 「타블」이라 말하고, 그림은 「타블로」, 의자는 「셰에즈」라 부르며, 서로들 이해한다. 중국인들은 그들끼리 역시 이런 식으로 의사를 통한다.

『무엇 때문에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면 안 된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그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껄껄 웃었다. 이웃 방 사람들이 벽을 두드리며 『조용하시오.』하고 소리 지를 때까지 그는 웃어댔다.

『이제는 달라지는 거다.』하고 그는 외쳤다. 그리고 지금부터 침대를 「사진」이라고 말하기로 했다.

『나는 피곤해. 사진 속으로 들어갈 테야.』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그는 아침마다 흔히 오랫동안 사진 속에 누워있었다. 그럼 의자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는 의자를 「괘종시계」라고 부르기로 했다.

즉 그는 일어나면 옷을 입고 괘종시계 위에 앉아 책상 위에 팔을 짚었다. 그러나 책상은 이미 책상이라고 불리우지 않았다. 책상은 이제 양탄자라고 불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침에 이 남자는 사진을 떠나 옷을 입고 양탄자 앞의 괘종시계 위에 앉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 셈이었다.

침대를 그는 사진이라고 말했다.

책상을 그는 양탄자라고 말했다.

의자를 그는 괘종시계라고 말했다.

신문을 그는 침대라고 말했다.

거울을 그는 의자라고 말했다.

괘종시계를 그는 사진첩이라고 말했다.

옷장을 그는 신문이라고 말했다.

양탄자를 그는 옷장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그는 책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진첩을 그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결국 이렇게 된다. 아침에 이 늙은 남자는 오랫동안 사진 속에 누워 있었다. 아홉시에 사진첩이 울렸다. 이 남자는 일어나 발이 시렵지 않게 옷장위로 올라섰다. 다음에 신문에서 그의 옷을 꺼내 입고, 벽에 걸린 의자를 들여다 보고, 양탄자 앞의 괘종시계 위에 앉아 자기 어머니의 책상을 발견할 때까지 거울을 뒤적거렸다.

이 남자는 이것이 즐거웠다. 그는 온종일 연습을 했고 새로운 단어들을 암기했다. 이제는 모든 사물의 이름이 바뀌었다. 그 자신도 이제는 남자가 아니라 하나의 발이었고, 그 발은 아침이었고, 그 아침은 남자였다.

이제 여러분들 스스로가 이 이야기를 끌고 나아갈 수 있다. 이 남자가 한 것처럼 여러분도 다른 단어들을 바꿔 볼 수 있다.

「울린다」라는 말은 」「세워놓다」로,

「언다」라는 말은 「바라본다」로,

「누워 있다」라는 말은 「울린다」로,

「서 있다」라는 말은 「언다」로,

「세워 놓다」라는 말은 「펼친다」로 바꿔 보자.

그러면 이렇게 될 것이다.

남자에 달린 이 늙은 발은 오랫동안 사진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아홉 시에 사진첩은 세워 놓았다. 이 발은 얼어 올라왔고 아침이 바라보지 않도록 이 발은 옷장 위에 자신을 펼쳤다.

이 늙은 남자는 파란 노트를 사서 이 새로운 단어들을 거기에 가득 적었다. 그는 할 일이 너무나 많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길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아주 드물게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사물을 부르는 새로운 명칭을 배웠고,그러는 동안 점점 본래의 정확한 명칭을 잊어 버리게 되었다. 이제 그는 자기 혼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갖게 된 것이다.

어느새 그는 때때로 이 새로운 언어로 꿈을 꾸게 되었고, 그리고 나면 학교 다닐 때 배운 노래들을 자기의 언어로 번역하여 나지막하게 혼자서 노래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이 번역도 그에게는 힘들게 되었다.그는 옛날의 언어를 거의 다 잊어 버려 이제는 본래의 그 언어를 파란 노트를 뒤적이며 찾아야만 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그는 두려워졌다. 사람들이 이 사물을 뭐라고 말하더라 하고 그는 오랫동안 생각해 봐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을 사람들은 침대라고 말한다.

그의 양탄자를 사람들은 책상이라고 말한다.

그의 괘종시계를 사람들은 의자라고 말한다.

그의 침대를 사람들은 신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의자를 사람들은 거울이라고 말한다.

그의 사진첩을 사람들은 괘종시계라고 말한다.

그의 신문을 사람들은 옷장이라고 말한다.

그의 옷장을 사람들은 양탄자라고 말한다.

그의 책상을 사람들은 사진이라고 말한다.

그의 거울을 사람들은 사진첩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이 남자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군가 『당신은 내일도 축구 경기를 보러 가십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듣거나, 또는 누군가 『벌써 두 달 동안이나 계속 비가 오는군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거나, 또는 누군가 『미국에 저의 아저씨가 한 분 계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는 웃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이 모든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우스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 이야기는 슬프게 시작되어 슬프게 끝났다.

회색 외투를 걸친 이 늙은 남자가 이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이보다 훨씬 더 나쁘게 된 것은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했고,

자기 자신하고만 이야기했고,

인사조차 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