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기 할머니(99)가 밭에서 매실 농사를 짓고 있다. 사진 경남복지재단
“노인들 단풍놀이 시켜주고, 경로잔치 해주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이 돈 보태라.”
이옥기(100) 할머니가 2007년 8월 13일 한삼협 경남복지재단 이사장에게 200만 원을 건네며 한 말이다. 당시 85세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경남복지재단의 도움을 받고 있던 이 할머니는 새해 들어 100세가 됐다.
6·25전쟁 때 월남한 이 할머니는 경남 하동군 하동급 흥룡리에 터를 잡고 매실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왔다. 남편 없이 홀로 아들, 딸을 키우느라 평생 고기반찬 한 번 먹지 못하고, 옷을 늘 이웃에게 얻어 입고, 휴지 대신 신문지를 써왔던 그였다. 1990년 자녀가 모두 독립하면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며 살아왔다.
허리가 90도로 꺾여 거동이 어렵고, 녹내장으로 왼쪽 시력을 잃어 시각장애인이 되자 이 할머니는 2004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됐다. 경남복지재단과의 이 할머니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경남복지재단 직원들은 이 할머니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반찬을 갖다 주고, 수시로 병원에 동행하고, 나들이를 시켜줬다. 할머니는 재단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때마다 매실 농사로 번 만 원, 생계급여를 아껴 모은 만 원을 저금해왔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2007년 할머니는 만 원짜리 200장이 든 검은 비닐봉지를 경남복지재단에 전달했다.
이옥기 할머니(99, 맨 앞 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2007년 기부한 200만원을 계기로 설립된 '천년사랑 장학회'에서 2017년 장학금 수여식을 하고 있다. 사진 경남복지재단
“1억 원 같은 200만 원을 도저히 쓸 수 없다”고 생각한 한삼협 이사장은 그해 8월 청년사랑 장학회를 설립했다. 한 이사장은 자신의 외부 강사료와 후원금을 모아 2009년부터 해마다 500만 원씩 재단 직원 자녀와 자원봉사자 자녀에게 대학 등록금으로 지원해왔다. 2021년까지 총 지원금은 6000만 원에 이른다.
장학금 전달식에는 매번 할머니도 참석했다. 이 할머니는 “노인네들 맛있는 거 사주라고 (돈을) 주고 갔는데 천년사랑 장학회로 크게 만들어서 놀랐다”며 “‘돈을 쓰는데도 질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기뻤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 할머니의 기부로 천년사랑 장학회가 꾸려졌다는 소식은 2015년, 할머니의 딸에게도 전해졌다. 딸 이오선(62)씨는 45년 전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이 할머니 곁을 떠났다고 한다. 집안의 도움 없이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가며 생활하던 이씨의 삶도 평탄치 않았다.
보험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씨는 사업이 망한 고객이 운영하던 도금 사업을 떠안게 됐다고 한다. 부산 녹산공단에 있는 전기표면처리전문기업 ㈜동아플레이팅 대표인 이씨는 “여자의 몸으로 금속 관련 산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직원들은 나와 이야기도 하지 않고 쳐다 보려고 하지 않아 매일 매일 울면서 살았다”고 회고했다.
힘들게 버티던 사업은 20년이 지난 2015년부터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씨는 “베풀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2018년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3년 동안 6000만원을 이 할머니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경남복지재단 산하 ‘하동요양원’에 기부했다.
경남복지재단은 설립 20주년을 맞은 지난 12월 이씨를 찾아가 ‘천년사랑 장학회’를 할머니의 이름을 딴 ‘천년사랑 이옥기 장학회’로 바꾸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씨에게 경남복지재단 후원회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씨는 “사업이 힘들어 어머니를 돌볼 수 없었을 때 경남복지재단에서 어머니를 돌봐 준 은혜를 잊을 수 없었다”며 “이제 사업도 제자리를 잡아가니 어머니 뜻을 이어가겠다”며 후원회장을 수락했다. 이씨는 2022년부터 매해 1000만원씩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한삼협 경남복지재단 이사장은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하면서 기부 문화가 위축돼 있다”며 "이 할머니의 선행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기부 문화가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