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보도자료
참 곱지요! 이(李) 어르신 경남일보 경일춘추 (12.2.수)
이  름 : 관리자
시  간 : 2009-12-02 17:27:38 | 조회수 : 1192
    참 곱지요! 이(李) 어르신
한삼협 (하동노인전문요양원장)

  신록이 찬란한 정열적인 여름,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방울이 송글 거리는 폭염의 무더운 여름날 오후 한때! 허리가 등나무만큼 흰 할머니가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짚고 요양원을 방문하셨습니다. 노인복지센터를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고 계시는 91세의 이○○어르신입니다. 안내를 받아 원장을 찾으신 어르신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십니다.
북한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월남하여 하동에 뿌리를 내리고 매실 밭을 가꾸며 생활을 꾸려 나가시는 국민기초생활 수급권자 어르신이었습니다.
어르신은 그동안 살아온 인생에 대해 조금씩 말씀하셨습니다. 20여 년 전 녹내장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어 버렸고 혼자 보내는 시간에 명심보감과 논어 등을 읽을 때도 특수 안경을 써야하는 어르신의 눈엔 계속 눈꼽이 끼이고 있었습니다.
평생동안 ‘고기 한번 제대로 안 드시고, 화장지 안사 썼다’는 어르신이 얼마나 검소하게 생활하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부모가 복을 짖지 못해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늙은 아들의 노후를 위해 돈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아들 노후가 걱정이 돼서 돈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지. 그러던 참에 다행히 아들도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었지. 이젠 우리나라가 늙은 애미와 자식을 먹여 살려주니 그 소중한 돈을 허투루 쓸 수가 있어야지”이제 다시 돌려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서 할머니는 수줍은 듯 구겨진 재생비닐봉지에서 현금 200만원을 꺼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 원장이 알아서 써!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늙으면 누구나 노인취급 당하는 것 보다 노인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할머니의 때 묻지 않은 사랑과 그 정성에 울컥 했다.
“할머님! 시력회복을 위해 수술이라도 제대로 한번 받아 보시죠!” 그러자 단박에 “아∼따! 징∼하게 오래 살았는디, 외눈박이라도 좋은 건 다 보여야!”
노인인구가 급증한다고 해서 그 속도만큼 우리사회가 노쇠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훌륭한 복지정책과 나이 듦의 가치가 구성원간의 아름다운 소통으로 이어질 땐, 노인은 세상의 튼실한 지팡이가 될 수 있습니다.
요양원 앞 옥산에 빗긴 산 노을을 바라보며, 황혼이 없으면 우리들이 쉬어갈 저녁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할머니의 얼굴이 어머니 얼굴처럼 하늘가에 번져나갔습니다.

                                                경남일보 경일춘추
                    Write : 2009-12-02 09:00:00   |   Update : 2009-12-02 0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