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의 하루
이 름 : 복지인
시 간 : 2004-05-07 15: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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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절망 속 희망 찾기’ 사회복지사의 하루
“저로 인해 변화하는 삶 볼 때 가장 행복해요” 미디어다음 / 김진경 기자,
사진=김준진 기자
평균 근로시간 주 52시간, 평균 근무기간 2.6년, 4년제 대학 졸업
1년차 평균연봉 1,300만원
종사자의 50%가 이직을 고려하는 직종.
지난 2001년 사회복지사협회가 조사한 사회복지사의 현주소다.
직업이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아…좋은 일 하시네요”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월급도 없이 자원봉사 하시면서…”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고 한다.
자신을 희생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일하는 자원봉사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들이
"3~4년 경력이 되어도 세금 떼고 채 100만원이 안 되는 월급을 받지요"
이런 대답을 하면 구차하게 돈 얘기나 하는
복지마인드를 상실한 ‘타락한 천사’라고 질타하는 것이 현실이다.
직업의 하나인 사회복지사. 하지만 그들이 낮은 곳에 내미는 손길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묵묵히 일하는 그들을 따라가봤다.
사회복지사 직업 선택에 후회는 없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갇혀있는 노인들이 많다.
백 팀장은 복지관 관할 구역 내에서
한 동네에 25명 안팎 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한다.
지난 5월 3일 오후 4시.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서울의 대표적 빈민층이 거주하는
서울 송파구 거여동 지역을 맡고 있는 송파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았다.
거여 2동 다닥다닥 붙은 연립주택 사이 공동화장실 앞에는
60대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겉옷을 챙겨 입지 않아 추워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서늘하게 했다.
“거여2동 181번지, 202번지, 204번지는
서울시 송파구 가운데서도 극빈층이 거주하는 지역이에요.
봄이 와도 두꺼운 점퍼 차림 그대로이거나,
여름에서 가을이 되어도 얇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에서 빈곤층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송파종합사회복지관 김창준(31)씨의 얘기다.
그는 송파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재가복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경력 4년차 사회복지사다.
“직장을 바꿀 수는 있어도 직업을 바꿀 수는 없다”는 그는
대학 진학 도전 세번째 만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고 그가 원하는
사회복지사의 길 가고 있다.
“한 달쯤 전이었어요. 제가 돌보고 있는 독거노인 할머니 댁에
가정방문을 갔는데 혼자서 울고 계시는 거에요.
좋은 구경거리가 있다며 동네 할머니들을 따라 나섰다가
약장수에 속아서 후원금을 받으면 갚겠노라고 돈을 빌려 약을 사놓고는
후회하고 계셨어요.
한달 생활비가 빠듯한 형편에 어떡하면 좋겠냐고 우시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김창준 씨는
“자녀가 있어도 돌보지 않아 사실상 버려지고 있는 어르신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며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야 할 텐데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려는
정책만 세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 사건이 있었다.
결혼을 꿈꾸었던 여자친구 부모님이
“장애인이나 돌보는 사람이 뭐 볼게 있느냐”며 반대한 것.
결국 여자친구와는 헤어지게 됐다.
나중에 알았지만 여자친구는 김씨의 낮은 연봉을 알고 난 후 애써 부모님을 설득하
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이 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 중앙대학교 부설 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았다.
이른 아침부터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들이 어린이날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빈곤층 아동 문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이 복지관에서 어린이날 행사는
1년에 몇 번 안 되는 큰 행사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재가복지와 청소년부문을 맡고 있지만 백정균(31) 씨도 행사가 진행될 장소에
천막 설치를 돕고 있었다.
“어제 날씨가 안 좋아서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어린이날 행사도 그렇고 취재도 그렇고요.
아내에게 인터뷰 한다는 얘기했더니 처음엔 별걸 다한다며 핀잔을 주더니,
아침에 나오려니 사회복지사에 대해 잘 알릴 수 있도록 하라며
옷까지 챙겨주더라고요.”
백정균 씨의 아내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다.
결혼 후 출산과 함께 그만뒀던 직장을 다시 다닌 것은 생활비와
자신의 용돈 20만원을 제하고 나면 겨우 20만원 남는 저축으로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흔쾌히 맞벌이에 동의했고, 9개월 된 아들 승호를
어머니가 맡아주기로 한 것이 다행이었다.
행사 준비를 마친 그가 사무실에 들어가 전자계산기를 두드리며
인터넷에서 할인쿠폰을 찾고 있었다.
중학교 저소득층 가정 자녀 대상으로 열고 있는 파랑새 공부방에 오는
태영이(가명,14)가 놀이동산에 가보는 것이 소망이라고 해 오는
15일 롯데월드에 갈까 하고 예산을 뽑는 것이라고 한다.
“부모님이 이혼해 엄마와 살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요.
엄마가 힘들게 하루하루 벌어 사는 한부모 가정에서 아이들과 문화생활을
즐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죠.
아직 영화관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아이도 있어요.
강남에는 엄마가 차에 태워 하루에 3~4개씩 과외며 학원을 다닌다는데
정말 엄청난 빈부 격차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에 목발을 짚은 할머니가 복지관 문을 들어섰다.
어제 밑반찬을 받아가지 못했다며 남았으면 달라고 했다.
또 오는 길에 병원에 혼자 가시던 할머니가 기력이 없어 쓰러져 있는데
모셔다 드려야 할 것 같다며 얼른 가보라는 얘기를 전했다.
백정균 씨는 어느새 복지관에서 사용하는 승합차 열쇠를 찾으며
같이 나가겠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서둘러 출발했지만 할머니가 계시다고 한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많아서 사회복지사에게 운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한다.
복지관을 나선 길, 그는 청소년 부문을 맡으며 소원했던
독거노인 댁에 가봐야 겠다며 남현동으로 차를 몰았다.
대상자의 삶 바뀌지 않을 때는 절망감 몰려와 백팀장이 일어나려 하자
오정희 할머니가 못내 아쉬운 듯 손을 꼭 잡고 놓질 않는다.
재가복지는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20분 남짓 걸려 남현동 관악산 자락 끝에 있는 오정희(89) 할머니의
집에 도착했다.
동사무소의 묵인 하에 살고 있는 무허가 판잣집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헐어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백씨는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바로 인기척이 없으면 머리 속을 스치는
불길한 생각 때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했다.
하루종일 혼자서 기도로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는 백씨와 동행한
기자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3년 전부터 이곳을 찾은 백씨는 지금은 청소년 파트를 맡고 있지만
틈틈이 와서 말동무가 되어 드린다고 했다.
“지난해 봄에는 손수 두릅을 따서 즙을 내 병에 담아 줄 정도로
건강하셨는데, 올해는 전화통화도 못할 정도로 귀도 어두워지시고
거동을 못하셔서 걱정이에요.
양로원에 가고 싶어 하시는데 시설이 꽉 차 자리도 쉽게 나질 않아요.
혼자 계시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할머니 댁을 나서 다시 복지관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가끔은 좌절감을 느낀다며 말문을 열었다.
“사회복지사가 일에 보람을 느끼는 대목은 서비스하는 대상자의
삶이 변화한다고 느낄 때거든요.
하지만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할머니가 갑자기 건강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를 나 몰라라 했던 자식이 돌아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점심 도시락과 밑반찬 배달 그리고 가정방문이 저희가 할 수 있는 전부에요.
끝이 없는 소모전이에요.”
백씨는 최근 허물없이 지내던 태영이(17,가명)의 태도에 마음이
많이 상한다고 했다.
“1주일 동안 무단결석으로 자퇴할 것을 권한
학교 선생님을 겨우 설득해 같이 집에 찾아갔어요.
새벽까지 게임을 했다며 점심을 훌쩍 넘긴 시간인데 잠을 자고 있더라고요.
학교에 가자고 설득했고, 옷을 갈아입겠다며 방에 들어가서는
몰래 집을 빠져 나가버렸어요.”
아버지의 상습 폭행으로 마음의 상처가 깊은 태영이가 복지관에 찾아오면
삼촌처럼 허물없이 얘기를 들어주곤 했는데,
“제 상담기술이 부족했던 것일까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지역복지관에 있는 사회복지사들의 역할은
그 지역 주민들과 ‘살아내는 일’이다.
지역 주민들 삶의 변화를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복지사도 사람인지라 때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절망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한다.
백씨는 요즘이 자신에게 그런 시기인 것 같다고 말한다.
“누가 대신 위로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 고민하며,
온전하게 제 몫으로 견뎌내야 하는 것이죠.”
사회복지사들, 늘 뭔가 부족해 ‘공부 또 공부’
복지 분야가 다양한 만큼 복지사들은 다양한 일을 한다.
복지사 경력 3개월째인 문호영씨가 복지관에서 준비한 어린이날 행사를 위해
물풍선던지기 코너를 준비하고 있다.
복지관 지하 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 백정균 사회복지사를 비롯해
문호영(28) 사회복지사와 직장체험연구생 이은진(23)씨,
그리고 대학교 가족복지학과 실습생 황현욱(21)군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오늘은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대방동의 ㄱ중학교 1학년 2반 학생들에게
‘또래상담’을 하는 날이라고 한다. 상담 워크북을 비롯해 아이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마술과 퀴즈도 준비했다. 원활한 수업 진행을 위해 사탕도 준비됐다.
대학에서 청소년지도학을 공부하고 사회복지사로 첫발을 내딛은 지 3개월이 된
문호영 씨. 그는 지난 수업에 학생들에게 호되게 당해 마음의 상처가 컸던지
“오늘은 실수하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사회복지사들이 여러 분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는데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곳이 학교 사회사업이에요.
사회복지사가 학교에 상주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왕따 당하는
아이들의 상담을 하는 거죠.
전에는 선생님들이 직접 했지만 점차 사회복지사에게 역할을 맡기고 있는
추세입니다.”
문씨는 “현장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비스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은 대상자의 마음을 얼마나 잘 읽어내느냐
하는 것인데, 학생들 상담에 얼마나 많은 공부가 필요한지 절감한다”고 말한다.
ㄱ중학교 1학년 2반 교실에서 또래상담을 하고있는 백팀장.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위한 또래상담은 학교측의 건의로 지난 주부터 시작됐다.
친구들에게 좋은 또래 상담자가 돼서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강의는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자신의 속마음까지 모두 얘기할 수 있는 ‘끈끈이’ 친구는 몇 명인가 하는
질문에 아이들은 “3명이요” “5명이요” “9명이요” 거침없이 얘기한다.
백정균 씨는 “강의 후 아이들이 부드러워졌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담임선생님의 얘기를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바로 자신이 사회복지사로서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라고.
오후 4시가 되어 다시 복지관에 돌아오니 어린이날 행사는 막 시작되고 있었다.
신나는 동요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무목걸이 만들기, 달고나 만들기, 단체줄넘기
등 150명의 지역 어린이들이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인근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과 서울대학교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찾아와
행사진행을 돕고 있었다. 후원자와 자원봉사자 개발을 맡고 있는 김낙규(29) 씨
는 “인근에 있는 서울대학생들과 직장인 자원봉사자들이 큰 힘이 된다”며
“아쉬운 소리를 한다기 보다는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며
“무슨 일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며 환하게 웃는다.
이날 행사는 영화감상과 저녁식사 그리고 선물 증정으로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마무리됐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좋다”고 답한다.
“제가 처음부터 좋은 사람이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
을 하다보니 점점 동화되는 것 같아요.”
퇴근시간이 따로 없고,
주말에도 가정방문과 아이들 상담을 해야 하는 고단한 생활.
그는 보다 좋은 직업과 더 많은 연봉을 쫓는 요즘 세태에서 한발 빗겨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