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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게 싸우기
이  름 : 관리자
시  간 : 2003-12-05 16:51:17 | 조회수 : 1154
나는 시골에서 나서 자랐는데, 그곳은 아직도 '씨족집단'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모였다하면 "양반/상놈" 가리길 좋아하고, 최근까지 '상놈' 취급받는 성씨의 사람들은 '인간 이하'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여전하다. 이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경향중에 한가지가, "그러게 상것들하고는 상대를 말아야 해"이다.

요즘같은 개명천지에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의식은 양반, 천민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이런식의 구획짓기를 좋아한다. 지역감정이나, 남녀성문제, 직업에 대한 의식에서 그것이 다른 형태로 발현이 된다.


나는 택시타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돈 내고 타는 거지만, 성격 고약한 택시기사님 만나면, 내내 편치 않게 앉아있다가, 눈치보고 비위맞춰줘야 하니까 피곤한 탓이다. 택시기사가 다 성격고약한것이 아니건만, 내 친척들중에도 택시기사 하는 분들이 있건만 내 의식속에는 '택시기사'는 나를 피곤하게 한다고 이미 박혀있다. 내가 피하게 된다. 버스타고 지하철타면 되는 문제이다.


나는 일상에서 나와 스치는 사람에게는 예절바르게 행동하는 편이다. 그냥 보이는 족족 꾸벅꾸벅 인사하고 미소짓고 지나가면 된다. 말을 섞지는 않는다. 피곤하므로. 아파트 경비아저씨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인사만 하고 지나가는 편이다. 경비아저씨가 두명이 교대로 근무를 하는데, 나는 최근까지 둘중에 한사람은 얼굴도 식별을 못했다. 관심이 없으므로. 한분은, 인사도 활기차게 하고 자꾸 아는척을 해서, 나도 기억한다.


어느날, 외출중에 전화를 받았다. 내가 외출한것을 모르고 집에 들렀던 아이들 외숙모가 전화를 했다. "형님, 여기 형님 아파트에 와 있는데요, 여기 경비아저씨가 기분나쁘게 굴어서 전화하는거예요. 어른이 있는데도 저러는데 애들만 있었으면 어쩔뻔 했을까 싶어요."


아파트 계단참에 누군가가 급한김에 '실례'를 해 놓고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경비아저씨가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더니 우리집 애들을 나무라듯 행동한 모양이었다. "야, 저기다 똥싼놈 누구야! 니네들 아니야?" 뭐 이런식이었던것 같다. 마침 거실에 있던 아이들 외숙모가 나가서 한마디 한 모양이었다. "아저씨 생각을 해보세요. 집이 여긴데 애들이 왜 나가서 계단참에 똥을 누겠어요?" 그런데, 경비아저씨가 말귀 못알아듣고 화풀이성 발언을 하여 기분을 잡치게 한 모양이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경비실에 들른 Jimmy


"아저씨, 잠깐 저하고 면회좀 하시죠."


그날 나는 그 경비아저씨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았다. 난 관심없는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으므로 매일 스쳐도 기억못한다. 나는 내가 어디사는 누구인지 설명을 하고 나서, 내가 외출시에 경비아저씨가 우리집문을 두드리고 한 행동에 대하여 매우 불쾌하다는 것을 밝혔다. "..... 집에 내가 없는 틈에 애들만 있는 집에 와서 우리집 애들을 상대로 아저씨가 함부로 행동하신거 그거 저는 용납이 안됩니다. 왜 그러셨나요?"


경비아저씨는 우물거리다가 "야 젊은년이 내가 아파트 경비나 한다고 사람 무시하는거야 뭐야?" 라는 자세로 돌변했다. 여기서 나는 판단을 해 보아야 한다. 내가 이사람을 '경비'이기 때문에 '그래 봐주자 당신이 아파트 경비밖에 더하니? 관두자'로 할것인가 아니면 '당신과 나는 동등한 인간이며, 나는 당신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해주고 있다'로 나갈것인가.


"그래,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이런태도는 사실 상대방의 전인격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상대방은 똥이 아니고 인간이다. 우리는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할 필요가 있다. '경비하기도 서러운데, 그냥 내가 봐주고 넘어가지'하는 식으로 상대를 감히 동정하는것도 합리적인 태도는 아니란 말씀이다.


나는 '경비아저씨'의 행동의 부당함을 지적했는데, 말귀 못알아듣는 경비아저씨는 '젊은년.... 니가 가진게 좀 된다고 뵈는게...내가 경비나 한다고 이게 사람을 뭐로 알고...'등 자격지심을 있는대로 드러내며 감정적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난, 누가 부당하게 내자식을 함부로 대하는 것만큼은 용서가 안된다. 내자식, 내 가족을 함부로 대하는 행동를 내가 수용하는 것은 스스로 용서가 안된다. 그래서 그날, 아주, 아파트 유리창들이 일제히 찌렁찌렁 울리게 한판 했다. 길가던 사람들이 멈춰서 쳐다보고, 창문밖으로 머리 내밀고 내다보고, 망신살 뻗치는 문제,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저씨가 이 아파트 경비를 하건, 고양경찰서 서장을 하건 나한테는 마찬가지다. 아저씨는 우리 애들한테 스트레스 해소하러 든건데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기분나쁜거고 아저씨가 잘못한 사항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라."는게 일관된 나의 논지였다.


최근에 경비한분이 바뀐것같다. 사람은 어떤 직업이건,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그게 싫으면 떠나야 하는거다. "일하기 싫은 당신, 불만 많은 당신 떠나라." 그리고 어떤 직업의 사람이건 '불가촉천민'쯤으로 대충 무시하는 것도 그리 온당한 처사는 아니라고 본다. 적당히 무시하기 보다는 동등한 사회적 인격체로 대화할 필요가 있을땐 해야 한다. 대화의 강도가 지나쳐서 유리창 깨지는 싸움이 일어나도 가끔할말은 해줘야한다.